[가슴으로 읽는 시] 밥숟갈을 닮았다
밥숟갈을 닮았다
움푹해라 내 욕망은 밥숟갈을 닮았다 천마 개의 숟갈이 한 냄비에 덤비듯 꿀꿀 거리고 덜그럭대는 서울에서 나도 움푹한 욕망 들고 뛰어가고 보름달 뜨면 먹고 싶어라 둥근 젖 움켜쥘 그때부터 나는 아귀였던가. 부르도자가 움푹한 입 벌리며 굴러가고 기름진 돼지 머리가 웃고 있는 좌판위의 서울 움푹해라 뒤뚱거리는 영혼도 밥숟갈을 닮았다 죽어서도 배가 부르게 해주십사 거위 주둥이를 빌린다.
- 최승호(1954 ~ )
숟가락! 비루하기도 하고, 거룩하기도 한 이름. 혼자 밥을 먹다 누군가에게 들킨 일이 있다면 알 것이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하나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이던가. 밥벌이가 없는 가여운 생(生)에게 한 끼 밥은 얼마나 거룩하고 눈물겨운 신앙인가.
왜 그랬는지 숟가락을 모아본 적이 있다. '목숨 수(壽)'자가 새겨진 옛 양은 숟가락, 하트 모양에 까맣게 때가 낀 것도 있었다. 솥바닥을 긁어 반달 모양으로 닳아진 숟가락.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참 인간 욕망의 형상이구나 싶었다. 영원히 배고프고 홀쭉한 몸뚱이에 머리 전부가 입인 아귀(餓鬼)의 형상. 그것을 닮은 게 솔직한 우리네 인생이라고 하면 저 '강남 스타일'은 섭섭해하려나?
숟가락 하나 차고 다니는 게 인생이다. 숟가락 들 힘도 없으면 그만 멈추는 인생이다. 하나 죽어서도 배가 부르게 해주십사 기원하는 게 종교라면 그것도 숟가락을 닮았다. 냉소적이고 유머러스한 이 시의 서늘한 깊이다. 조선일보 (9월 10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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