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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동시] 엄마의 배웅

무너미 2012. 11. 8. 05:05

 

 

[가슴으로 읽는 동시] 엄마의 배웅

 

어마의 배웅

 

고장 난 냉장고

안과 밖을 깨끗이 닦은 엄마

마른행주질 하시곤 문짝에 뽀뽀했다.

다둑다둑 등판 두드려 주며

혼자 말했다.

 

-어느새

15년이 되었구나.

그 동안 애썼다.

정말 수고 많았다.

 

새 냉장고 타고 온 트럭에

고장 난 냉장고 태워 보낸 엄마

한참 동안

대문 밖에 서 계셨다.

 

                                   - 유희윤(1944~       )

 

 

이런 애틋하고 아름다운 배웅도 있을까. 냉장고는 십오년 간 손때가 묻었다. 손때뿐이겠는가. 식구들이 먹을 반찬 칸칸이 챙겨두려고 반찬자국도 켜켜이 묻었을 냉장고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애틋하다. 고장 난 냉장고를 깨끗이 닦고 뽀뽀하고 등판까지 두드려 주는 마음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어렵게 장만한 냉장고였으리라. 행여 고장 날까 망가질까 조심조심 다루었을 터이다. 냉장고도 그 마음을 알아서 고장 한 번 나지 않고 탈 없이 식구들의 반찬지기 노릇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랴. 더는 쓸 수 없는 폐물이 되어 떠나는 냉장고를 트럭에 태워 보내는 마음이 아프다. 가구도 우리가 아끼고 도닥여 줄 식구라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 수고했네' 하고 등판이라도 두드려 줄 일이다. (조선일보 11월 8일)

이준관·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