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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나는 사람들의 말이

무너미 2012. 11. 21. 06:12

 

 

[가슴으로 읽는 시] 나는 사람들의 말이

 

나는 사람들의 말이

 

나는 사람들의 말이 무섭다.

이것은 개라하고 저것은 집이란다.

여기가 시작이고 저기가 끝이란다. -

그들의 말은 너무도 분명하다.

 

사람의 감각도 무섭고, 조소어린 장난도 두렵다.

사람은 있을 일이며 있었던 일을 모조리 안다.

어느 산에 대한 경탄마저 이제는 없고,

정원과 정원이 신(神)과의 접경이 되고 있다.

 

나 언제나 경고하고 지키나니,

멀리 떨어져 살지어다.

내 즐겨 듣는 사물의 노랫소리.

허나 너희들이 손을 대면

사물은 굳어 입을 다문다.

내 주변의 온갖 사물을 죽이는 사람들이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사람들은 사물의 이름만 알 뿐이면서 그 사물을 안다고 여긴다. 뿐인가. 사람들은 치장된 한 사람의 이름만 가지고 그의 전부라고 여기고 판단한다.

 

이 시는 인간이 가진 맹목성에 대하여, 사려 깊지 않음에 대하여 무서워하고 슬퍼한다. '시작'과 '끝'을 말할 수 있다니. 그것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니! '있었던 일'과 '일어날 일'을 다 안다니! 난센스다. 그러니 그 어떤 '경탄'마저 사라진 세상이 된 것이다.

 

함부로 사물에 손을 대서 사물의 입을 다물게 하지 말고 멀찍이 사물들이 입을 열고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 과학자와 시인이 어디가 다르겠는가. 문득, 시심(詩心)이 없는 과학자도 노벨상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