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한시

김장 蓄菜(축채)

무너미 2012. 11. 24. 05:55

 

 

김장 蓄菜(축채)

 

시월이라 바람세고 새벽서리 매서워져         十月風高肅曉霜(시월풍고숙효상)

울 안팎의 온갖 채소 다 거둬 들여놓네.        園中蔬菜盡收藏(원중소채진수장)

김장을 맛나게 담가 겨울나기 대비해야        須將旨蓄禦冬乏(수장지축어동핍)

진수성찬 아니라도 하루하루 찬을 대지.       未有珍羞供日嘗(미유진수공일상)

암만 봐도 겨우살이는 쓸쓸하기 짝이 없고    寒事自憐牢落甚(한사자련뇌락심)

늙은 뒤로는 유난스레 감회에 깊이 젖네.      殘年偏覺感懷長(잔년편각감회장)

이제부터 먹고 마실 일 얼마나 남았으랴       從今飮啄焉能久(종금음탁언능구)

한 백 년 세월은 유수처럼 바쁜 것을.          百歲光陰逝水忙(백세광음서수망)

 

                                                                  ―권근(權近·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의 저명한 학자인 권근이 음력 10월에 김장을 하고나서 지었다. 늦가을이 훌쩍 다가오자 채소를 거둬 겨울을 날 채비를 서두른다.

말리가나 절여서 겨울 내내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보니 안도감과 함께 이제는 한해도 저물었다는 느낌이 엄습해온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김장을 하는 연중(年中) 행사도 무심히 지날 수가 없다.

 

김장은 여느 음식 장만과는 다르게 인생의 무게를 담은 듯하다. 600년이 흐른 지금도 이 한시에 담긴 감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 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