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우연히 읊다 偶詠(우영)
우연히 읊다 偶詠(우영)
산 늙은이랑 산새랑 山翁輿山禽(산옹여산금) 한 처마 밑에 함께 살지요 相宿一簷裏(상숙일첨리) 어제는 제가 먼저 날더니 昨日渠先飛(작일거선비) 오늘 아침에는 내 뒤에 일어났구나. 今朝後我起(금조후아기)
- 무명시(無名氏)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시다. 우리의 농촌 마을과 산골에는 옛날에도 지금에도 저런 마음씨를 지닌 분들이 여기저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사람들이 산의 일부로 특별할 것 없는 초가집을 지어 살면 산새는 그 추녀 끝을 찾아와 둥지를 튼다. 집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따지는 것은 문명에 물든 인간의 버릇일 뿐 산 늙은이도 산새도 초가집을 제 것이라 우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오늘 아침은 산새보다 내가 먼저 일어났다고 뽐내는 이 할아버지, 진짜 아이 같다. 늙은이와 산새가 사이좋게 한집 식구처럼 주고받는 대화를 혼자 사는 산 늙은이의 고독한 넋두리라고 봐선 안 된다. 그 풍경이 산 위로 막 솟아오른 햇살처럼 상쾌하고도 기분 좋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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