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산행
산행
1. 스스슥 스쳐가는 잿빛 뱀 한 마리 화들짝 겁만 주고 풀숲으로 사라진다. 주인의 승낙도 없이 들어섰던 벌이다 2. 이 산은 생명이다 긴 잠을 깨우느니 머리로 스며드는 투명한 맑은 바람 영혼이 숨 쉬게 하니 우리가 온 곳이다
―유자효(1947~ )
우리는 산을 유독 사랑한다. 무릉도원이며 청학동처럼 이상향도 산에서 구할 만큼, 예부터 산은 우리의 휴식처요 은둔처요 구원처였다. 시멘트 속에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산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쉼터다. 찾는 이가 너무 많아 몸살 앓는 산에게는 미안할 지경이지만, 그래도 만만한 게 산행이다. 히말라야 등반하듯 차리고 다닌다고들 비아냥거려도 차림 외엔 돈도 별로 안 드니 말이다.
산은 그렇게 '승낙도 없이 들어'가서 산소 공양만 잔뜩 받고 오는 영원한 고향이다. 그의 오랜 식구인 '잿빛 뱀'이 '화들짝' 겁을 주지만 산은 우리를 한결같이 받아주고 심신을 씻어준다. 항상 그러하니 '머리로 스며드는' 게 '투명한 맑은 바람'뿐이겠는가. 하여 산에 들면 어질어지는 것인가, 아니 어진 이가 산을 더 좋아하는 것인가. 아무려나 산은 '우리가 온 곳'이다. 더 잘 살피며 다녀야겠다. 산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정수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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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글
아름다움을 기억합니다.
아름다운 여행을 할 때면, 그 시간을 셈하지 않고 그 순간을 누리십시오.
사람들은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순간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 린데 폰 카이저링크의 ''마음으로 보는 세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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