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활
활
'활' 하고 무사처럼 차분히 발음하면 입 안의 뼈들이 벼린 날처럼 번뜩이고 사방은 시위 당겨져 끊어질 듯 팽팽하다
가만히 입천장에 감겨오는 혀처럼 부드럽게 긴장하는 단어의 마디마디 매복한 자객단처럼 숨죽인 채 호젓하다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다 호흡 없던 장면들을 노루처럼 달리게 하는 활활활 타오르게 하는 날쌔고 깊은 울림
허공의 누군가가 '활' 하고 발음했는지 별빛이 벌써부터 새벽을 담 넘어가 내일로 촉을 세운 채 쏜살같이 내달린다
―정상혁(1986~ )
▲ 유재일
갑오년은 말띠 해. 말 중에도 청마(靑馬)의 해다. 푸른 말이 내달리면 주위도 온통 푸른빛으로 눈부실 것만 같아 덩달아 들뜬다. 상서로운 청마에겐 백동수 같은 조선의 무사가 어울리겠지만, 거기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활이다. 활! 활 잘 쏘는 민족 후손답게 우리의 청년 궁사들은 일찍이 금빛 과녁을 관통하며 세계를 제패해왔다. 백성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활이라면 귀신같이 잘 쏘던 조선 사람들! 그 솜씨로 올해 목표도 더 잘 맞히고 복도 잘 맞히시길! 청마 해에는 또 상생의 기운도 강하다니, 나라의 기세도 푸르게 '활활활' 타오르고, 모두에게 푸른 도약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
정수자 |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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