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윷놀이
윷놀이
치자 향 풀풀 내며 내려앉는 함박눈 넉가래 손잡이를 매만지는 잡부 앞에 김 서린 비닐하우스 노란 오이꽃이 핀다 하루치의 일당과 한 켤레 털신을 위해 살얼음 얇은 눈이 안 녹은 듯 녹은 내를 우리는 해진 발 대신 신을 들고 건넜다 이제는 갈라지고 자꾸만 터지는 손 칼바람 밀쳐 내며 어딜 향해 뻗는지 던지는 나무 윷가락 모였으면 좋겠다
―서정택(1962~ )
▲김성규
윷판은 늘 떠들썩하다. 편을 먹고 여럿이 둘러서면 윷놀이의 신명은 한껏 오른다. 혼자 몰두하는 게임과 달리 함께하는 맛에 요즘도 인기가 좋다. 그래도 시골의 마당 윷놀이만 하랴. 윷가락을 하늘 높이 던지고 떨어질 때까지 한 바퀴 춤을 돌던 아버지 모습은 명절 윷놀이의 정점(頂點)이었다. 오죽하면 정월 대보름까지의 윷놀이 외유(外遊) 후일담이 전할까.
여럿이 할 때 더 흥겨운 윷놀이. 윷판은 풀죽은 삶에도 추임새를 넣는다. 명절에 어른 만나기 두려운 '삼포세대'며 명절증후군 며느리들도 윷가락을 높이 던지며 크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치 일당'으로 세뱃돈을 꼬깃꼬깃 마련할 '잡부' 앞에도 가족이 모이면 좋겠다. 시원하게 던진 '윷가락'처럼 흩어진 마음들 모두 모여 서로에게 윷이 되고 모가 되길-.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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