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웃는 당신
웃는 당신
당신, 날 보고 웃네요 찻잔 둘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오래전에 그랬듯이 당신, 여전히 날 보고 웃네요 어느새 창밖에는 눈발 가득하고요 나는 아직 못한 말이 있는데 아니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두고 온 말들은 머릿속을 맴돌고 나는 이렇게 아픈데 여전히 아무 말 못했는데 빙그레 미소를 머금은 당신, 내 앞에 웃고만 있네요
-곽효환(1967~ )
▲유재일
화자는 만면(滿面)에 미소를 머금은 당신과 마주 앉아 있다. 둘 사이에는 낡은 탁자가 하나, 그리고 그 위에 찻잔 둘이 얹혀 있다. 화자는 내심(內心)이 들떠 있고, 당신은 느긋하고 차분하다. 화자는 일층 높고, 당신은 일층 낮다.
화자는 아프고 위태로운 형편이지만 화자 또한 말을 꺼내놓고 있지는 않다. 속마음만 쏟아지는 눈발처럼 수선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뿐.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사랑의 장면이 떠오른다. 이별하거나 해후(邂逅)하는 사랑은 얼마나 할 말들이 많겠는가. 부려놓으면 산처럼 쌓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당신은 잔잔한 미소로써 안부 묻는 일을 대신하고, 그윽한 미소로써 애틋함을 끌어안아 어루만진다. 큰 사랑은 이처럼 주고받는 말을 버리고도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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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글
들국화가 아름다운 이유
들국화가 아름다운 것은 거친 들판 억센 풀들 사이에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도 소박함이나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알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친 것은 장미였습니다.
장미는 그 꽃이 화려할수록 향기가 약합니다.
수수하고 덤덤할수록 깊고 진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멀리, 그리고 오래.
- 한수산 산문집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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