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조

선인장

무너미 2014. 7. 3. 11:37

 

 

가슴으로 읽는 시조 선인장

 

선인장

 

꽃! 하고 주었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 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내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김윤숙(1955~)

                           ▲이철원

 

손대는 것마저 조심스러운 선인장. 온몸에 두른 따가운 가시들 때문에 오기로 꽁꽁 싸맨 느낌도 풍긴다. 하지만 막상 갈라 보면 속은 무르기가 짝이 없다. 가시를 잔뜩 세웠지만 걸핏하면 울음을 깨무는 속 여린 사람 같다.

 

어떤 사랑도 그러하리라. '꽃! 하고 주었더니' 가시만 박는 사랑에 깊이 다치기도 하리라. 손에 박힌 가시야 얼른 뽑을 수 있지만 마음에 박힌 가시는 평생 욱신거린다. 사랑은 그렇게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똑같지 않다. 양도 질도 다를 뿐 아니라 대상도 서로 어긋나기 일쑤다. 그래서 사랑은 늘 '화근'이다.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편이 더 아렸다'고 뇌듯 사랑이야말로 '수많은 명주실 가시' 같은 고통과 갈증 속에 피우는 꽃이다.

 

그래서 또 찔리더라도 '꽃!' 하면 주고 싶은 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무조건 사랑이거니, 아픔 없는 사랑은 또 진짜 사랑이 아니거니!

정수자 | 시조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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