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무너미 2014. 11. 3. 19:34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戲贈周卿丈(희증주경장)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田夫偶爾入長安(전부우이입장안)   촌뜨기가 우연히 장안을 들어오면서

朽索累累縛破鞍(후삭누루박파안)   썩은 새끼줄로 낡은 안장을 칭칭 동여맸지.

僮畏達官忙引避(동외달관망인피)   고관을 겁내 아이 종은 허겁지겁 피하고

馬臨周道苦盤桓(마림주도고반환)   큰길에 들어서자 말은 한사코 뒷걸음치네.

荷衣冷落皆蒙垢(하의냉락개몽구)   꾀죄죄한 옷차림에 먼지를 다 뒤집어썼고

菜色憔枯更厚顔(채색초고갱후안)   풀만 먹어 앙상해진 데다 낯짝까지 두꺼워졌겠지.

靑眼故人多不識(청안고인다불식)   반기던 벗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서

相逢枉作校生看(상봉왕작교생간)   똑바로 마주쳐도 교생이라 잘못 보네.

 

조지겸(趙持謙·1639~1685)

 

                        일러스트 : 이철원

 

조선 숙종조의 문신 조지겸(趙持謙·1639~1685)이 친구 최후상(崔後尙)에게 지어 주었다. 벼슬에서 쫓겨나 시골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하려는 순간 친구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다. 서운함에 머뭇거리는 그에게 친구는 한참 만에야 "행색이 너무 초라해 못 알아봤다"고 하면서 술을 대접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장난삼아 시를 써 주고 흔쾌하게 웃고 헤어졌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기분이 완전히 가시기는 어려운가 보다. 인간사의 씁쓸한 맛을 본 느낌이 호쾌한 웃음기에 배어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프리미엄조선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을 샀다는 아이에게  (0) 2014.11.17
정남(井男) 생일에 장난삼아 쓴다  (0) 2014.11.10
성근 울타리  (0) 2014.10.27
絶筆(절필) 절필  (0) 2014.10.20
紅葉(홍엽) 단풍  (0) 201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