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아직
아직
너에게 내 사랑을 함빡 주지 못했으니 너는 아직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사랑을 너에게 함빡 주는 것이다 보라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도 그들의 사랑을 함빡 주고 가지 않느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들의 사랑이 소진됐을 때 재처럼 사그라져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너는 내 사랑을 함빡 받지 못했으니
ㅡ유자효(1947~ ) ▲일러스트 : 이철원
'함빡'이라는 말 참 좋다. 차고도 남도록 넉넉하다는 뜻이다. 물이 겉으로까지 스며 나와 젖는다는 뜻이다. 넘쳐 흐르도록 가득가득한 상태를 뜻하니, 정을 이처럼 준다는 것에는 성심으로 혼신을 다한다는 뜻이 있다. 시인은 사랑을 할 때에도 함빡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 미진한 게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슴에 저장되어 있는 사랑의 총량을 다 소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랑의 불을 다 써서 없애기 전까지는 재처럼 사늘하게 사그라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새, 한 송이의 꽃도 사랑을 함빡 주고 간다는데 우리는 과연 무슨 일에 밤낮없이 땀을 쏟는 것일까. 새처럼 이 세상에 미성(美聲)을 보태지도 않고, 꽃처럼 이 세상에 미색(美色)을 보태지도 않고.
문태준 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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