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조

시간은 가끔 내릴 역을 지나쳤다

무너미 2014. 12. 5. 09:40

 

 

가슴으로 읽는 시조 시간은 가끔 내릴 역을 지나쳤다

 

시간은 가끔 내릴 역을 지나쳤다

 

망설임에 머뭇대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소실된 변명을 삼킨 미로 같은 터널 너머

우리는 때로 무수히

내릴 역을 지나쳤다

 

폐선이 되었다는 영동선 미로(未老)역에선

홀로움을 견뎌오던 침목의 침묵이 더러는

다음 생 지평(砥平)역에 당도할

화석 같은 사연이 되듯

 

산다는 건 지난 생에 폐역 하나 남기는 일

망설임에 머뭇대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불현듯, 생의 변곡점 돌아

그대라는 역에 닿는 일

 

이민아(1979~         )

                       일러스트 :이철원

 

망설임은 우리 발밑에 구덩이를 판다. 그 속에 뭔가를 묻고는 땅을 치게 하기 일쑤다. 그때 망설이지 말고 얼른 움직일 것을! 기차를 타든 내리든 곧바로 행동에 옮길 것을! 그러면 그 시간을, 그 사람을 잡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되감아보는 필름을 누구나 품고 있으리.

 

그 역에서 내렸다면 생이 바뀌었을지도, 돌아보면 이미 늦은 것. '놓친 기차는 아름답다'고 일찍이 이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알면서도 속절없이' 망설이다 '폐역'을 남기거나, 폐역으로 남기도 한다. 아직 덜 늙은 역[未老驛] 하나쯤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불현듯 생의 어느 변곡점을 돌아가다 보면 '그대라는 역'에 닿기도 하려나.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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