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낮잠
▲일러스트 : 이철원 |
낮잠
칠월에 핀 능소화는 주황이 그림자다 혓바닥 무늬처럼 천연스런 색이란 듯 벌 나비 통째로 취한 붉은 빛을 들인다
꽃대는 넝쿨보다 휘청휘청 감기면서 꽃망울 송이송이 더듬어 스민 햇살 꼭 다문 꽃잎을 벌려 입 안 가득 번진다
옷섶을 풀어헤친 곤한 듯 나른한 잠 담장 아래 고양이가 발을 얹고 짚는 허공 바위를 감아올린다 꿈에서도 힘을 쓴다
ㅡ이석구(1960~ )
능소화가 도처에서 눈길을 잡아끈다. 능소화는 먹구름 다 쏟은 하늘에 태양이 작열할 때면 더 농염해지는 여름의 꽃이다. 진한 주황의 꽃빛에 나무를 휘어 감고 오르는 습성 때문일까, 능소화는 묘한 관능을 풍긴다. 그래서 그림자도 |
주황일밖에 없는 칠월의 능소화에 자꾸 눈이 젖는가.
더위에 지쳐가는 한여름, 비라도 내리면 저항이 불가능하게 낮잠의 유혹이 끈끈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능소화는 '고양이가 발을 얹'는 허공을 온몸으로 짚어가며 또 뜨겁게 타오른다. '꿈에서도 힘을' 쓰는 것은 도리 없이 감겨드는 저 능소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옷섶을 풀어헤친 곤한' 낮잠에 빠졌다 나오면 침을 좀 흘려도 좋으리. 창밖의 능소화가 환한 낯빛으로 보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으려니.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름집에서 (0) | 2015.08.15 |
---|---|
소나기 (0) | 2015.08.05 |
낙수 (0) | 2015.07.22 |
초복 무렵 호박넝쿨 (0) | 2015.07.17 |
미류나무 (0) | 201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