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실록 편찬을 마치고
실록 편찬을 마치고
오늘에야 오랜만에 화산을 다시 보고 돌아온 뒤 종일토록 대문을 닫아 두었네. 책 더미 속에서 팔을 베고 누워 뒹굴다가 초목 사이로 뒷짐 지고 천천히 걸어보네. 지나고 나면 알게 되지 모든 게 환영임을 집에 오면 느끼지 집만이 편안하다는 것을. 마을 사는 벗들아 어땠느냐 묻지를 마오. 머리 허연 옛 얼굴 십년 동안 똑같다네. |
實錄畢役 還家有賦(실록필역 환가유부)
久矣今朝見華山(구의금조견화산) 歸來終日掩荊關(귀래종일엄형관) 曲肱頹臥琴書內(곡굉퇴와금서내) 負手徐行草樹間(부수서행초수간) 過境終知皆幻夢(과경종지개환몽) 還家始覺有餘閒(환가시각유여한) 里中父老休相問(이중부로휴상문) 白首十年依舊顔(백수십년의구안) |
순조 연간의 저명한 여항시인 소은(素隱) 김희령(金羲齡)이 지었다. 1835년부터 1838년까지 만 4년 동안 진행된 순조실록 편찬 작업에 참여하고 귀가하였다. 역사에 길이 남을 국가적 편찬 사업에 규장각 서리(書吏)로 참여하였으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뿌듯한가? 보람찬 일을 했다고는 하나 지나고 나니 환몽(幻夢)이다. 부러워하는 남들의 시선도 다 부질없다. 오랜만에 집에 틀어박힌 채 뒹굴다가 산책도 해보니 내게 여유와 행복을 주는 공간은 집밖에 없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벗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묻겠지. 그러나 나는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옛날의 나일 뿐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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