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양지쪽
▲일러스트 : ? | 양지쪽
따스한 볕이 드는 쪽으로 화분을 옮겨 놓았어요 베고니아 꽃봉오리 팔순의 할머니 여우잠 같아요 관음죽을 보면 대나무가 둘러서 있는 집 백부님의 파안대소가 떠오릅니다 채송화 꽃눈을 가진 이름도 가물거리는 아이 반질거리는 옷소매 꽃잎 아이비가 재잘 재잘거리며 깔깔거려요 아이들, 따뜻한 양지쪽에 나란히 서있어요
―김정운(1946~ ) 볕이 그리운 때이다. 밝은 햇빛이 이불처럼 쏟아지는 담벼락 아래 서 있고 싶다. 시인은 양지 쪽으로 화분을 옮겨 놓는다. 베고니아의 빨간 꽃봉오리를 보면서는 할머니의 깊이 들지 않는 잠, 겉잠을 생각한다. |
푸릇푸릇하고 꼿꼿하게 선 관음죽을 보면서는 백부의 한바탕 크게 웃는 훤칠한 웃음소리를 듣는다. 맑은 날 햇볕을 받을 때 피는 채송화를 보면서는 아이의 깨끗하고 순수한 동심을 떠올린다. 그리고 덩굴식물 아이비를 보면서는 재잘거리고 깔깔거리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사람만이 햇볕 받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꽃에게 햇볕은 음식이다. 꽃에게 햇볕은 흙이며 바람이며 봄비이다. 양지가 많아지는 봄이 오고 있다. 환한 쪽으로 마음도 옮겨 놓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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