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적경(寂境)
▲일러스트 : 이철원 | 적경(寂境)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백석(1912∼1996)
눈이 내리고 배나무에서 까치가 짖는다. 상서로운 산중의 아침이다. 나이 어린 아내가 첫아들을 낳았다니 신생아의 것이자 산모의 것인 하나의 최초가 탄생했다. 모자의 것이자 산국을 끓이는 늙은 홀아비의 것인 미지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
태어났으니 이제 죽을 것이다. 태어나는 자의 이웃으로 죽어가면서, 죽어가는 자의 이웃으로 살 것이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지 않고 홀로 죽지 않는다. 신생아가 홀로 태어나지 않도록 누군가 낳아주고 누군가는 미역국을 끓여준다. 늙은 홀아비가 홀로 죽어가지 않도록 누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그의 곁을 지킬 것이다. 가면 오고, 갔으니 온다. 왔으니 가고, 가면 또 오는 것이다. 적막한 산골에서도 예외 없이 그려지는 사람과 시간 사이의 고요한 경계이고 풍경이다.
한데 미역국을 끓이는 사람이 왜 늙은 홀시아버지일까? 외딴집에서'도' 산국을 끓이는 이유는?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연이 궁금하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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