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워터홀
워터홀
사막이 열어 놓은 가슴속 물웅덩이 사자와 어린 기린의 생명을 받드는 일 한 번도 메마른 적이 없다지요 지금까지
맥없는 갑질이나 사냥은 반칙이라고 사소한 간청이나 모호한 소원 없어도 믿어요, 방도 없지요 막연한 합의지만요
저만치 물러앉은 석양도 잠이 들면 서로에게 등 기대고 고만고만 사는 일도 수척한 낮은 달빛을 기다리는 일이지요
―김의현(1963~ ) |
워터홀은 물웅덩이와 조금 달라 보인다. '열대지방에서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가는' 조건 때문이다. 도심 거리라면 메우기 급급할 웅덩이가 야생동물들 삶터에서는 '생명을 받드는' 소임으로 오롯해진다. '사소한 간청이나 모호한 소원 없어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계. '막연한 합의'임에도 서로 믿고 깃드는 생명의 일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서로에게 등 기대고 고만고만 사는' 이곳 가슴들에도 비슷한 웅덩이가 있을 것이다. 2월이라는 물웅덩이를 딛고 3월의 새순이 웃음 틔울 채비를 하듯. 그 속에서 '수척한 낮은 달빛을 기다리는 일' 또한 저녁을 웅덩이 삼는 우리 나날의 오붓함일까. 때때로 민낯을 꺼내 고요히 비춰보기도 하니.
정수자 시조 시인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신 ―소쇄원 제월당에서 (0) | 2017.03.10 |
---|---|
경칩 무렵 (0) | 2017.03.03 |
우수 무렵의 시 (0) | 2017.02.17 |
어머니 33 (0) | 2017.02.10 |
내설악에서 길을 잃다 (0) | 2017.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