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하관(下棺)
▲일러스트 : 김란희 | 하관(下棺)
아버지께 업혀왔는데 내려보니 안개였어요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풀어지세요 벼랑을 감추시면 저는 어디로 떨어집니까
―천수호(1964∼ ) ('우울은 허밍', 문학동네, 2014)
오리무중(五里霧中), 사방 5리(약 2㎞)가 안갯속이라는 말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으니 온 길도, 갈 길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막막한 시간 혹은 세월 앞에서 떠오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 오리무중이 감추고 있는 벼랑으로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져 하관(下棺)되는 게 예정된 우리 삶이라면 이 오리무를 풀어놓은 이는 누구일까? |
세상 벼랑을 감추기 위해 아버지는 스스로 풀어져 안개가 되신 걸까? 떨어질 벼랑을 아버지가 감추었으니 '나'도 안갯속에 주저앉아 안개로 풀어질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데, 아버지가 등에서 '나'를 내려놓은 그곳이 안개였다니 안갯속이 벼랑이었던 걸까?
벼랑을 품은 오리무의 일생이 한 장(丈)의 나무상자에 담겨 하관 된다니, 그 작은 나무상자야말로 오리무중일 것이다. 떨어진, 아니 떨어질 벼랑이 짙고 가파를수록 더욱.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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