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과천 집에서
▲일러스트 : 이철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 ~1856)는 만년에 과천에서 살았다. 병석에 누운 채 봄철을 보내던 어느 날이다. 비가 내리는 마당가에 서 있는 복사꽃이 눈에 들어왔다. 함초롬히 빗물을 머금고 피어 있는 꽃은 마치 눈물 어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자태다. 가랑비 속에서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복사꽃이 봄바람에 웃고 있다(桃花笑春風)"고 말해야 제격이건마는 거꾸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무래도 병들어 누워 있는 내가 가여워서 활짝 웃지 못하는 거겠지. 복사꽃은 내가 애처롭고, 나는 복사꽃이 애처로워 견딜 수 없다. 바깥세상에서는 모두들 봄바람에 웃고 있어도 울 안의 복사꽃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과천 집 울안에서 꽃과 노인 둘이 울고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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