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어린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한강(1970~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일러스트 : 윤혜연 제목이 본문보다 더 길다.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될 때가 있는 법이다.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 봄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귤꽃 향기 가득한 그 봄날의 제주 바다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라는 조용필의 노래가 스쳐간다.
'무덤'에서 '무'자 하나를 떼어 내면 '덤'이 된다. 죽음이 삶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나쁜 꿈에서 깨어나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아직' 이 세상에는 오월 제주 봄 햇빛이 있고, 그 햇빛 속을 나는 어린 새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날기 시작한, 날아가는 그 어린 새의 날개 너머로 밤과 산과 바다가, 눈물과 햇빛과 바람이 보인다. 눈물은 어린 새의 것이기도 하고 시인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뜨끈한 성게 미역국에 흰밥을 말아 먹었으면 한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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