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 바위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1908~1967) 시로 우리네 삶의 진 데, 마른 데 얽히고설킨, 하지만 다정하고 다행한 정원을 하나 가꿔 볼까 합니다.
우선 한편에 바위를 놓아봅니다. 우리네 환하고 단단하기 비할 바 없는 화강암의 그것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물건입니다. 만지면 만져집니다만 물건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침묵으로 된 준엄한 말씀이기도 하고 노래이기도 합니다. 희로의 파도를 가지고 가면 침잠을 얘기해 주겠지요.
나와 세상을 멍들게 하는 들끓는 욕망을 그 앞에 풀어놓아 보면 어떨까요? 3월이니 곧 담쟁이넝쿨 싹도 애교처럼 올라올 겁니다. 바위는 빙그레 웃기도 할 겁니다.
문득 서울 광화문 광장에라도 서게 되면 인왕산 큰 바위 한참 올려다볼 일입니다. 조선, 고려 적 사람이 되어 그리해볼 일입니다. 이제나 그제나 영원 앞의 작은 나그네라고 바위는 속삭입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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