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의 눈으로 본 6.25전쟁 1950년 10월 14일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 북경한국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사진들로서 중공군 종군기자가 촬영한 사진들이다. 6.25전쟁을 상대방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장진호 동쪽에서 중공군79사단이 미7사단 31연대 1대대를 괴멸시키고 전과를 확인하고있다. 미군 시체들이 누워있다. 장진호에서 미31연대 57포병대대를 공격하고있는 중공군. 장진호에서 공격하고 있는 중공군. 미 57포병대대가 밤새도록 치룬 전투속에서 위의 사진은 중공군기자가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날이 밝고 중공군이 물러난 다음 미군이 찍은사진이다. 미군기록에 의하면 장비중에 20%가 파괴되었다고 했다. 미군들은 슬리핑빽에서 미처 나오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했다. 밤새도록 인해전술로 다가오는 중공군을 향해 총을 너무 많이 쏘다보니 탄약이 다 떨어저서 죽은 병사의 탄창을 벋겨서 또다시 쏴대다보니 날이 밝더란다. 그런대 중공군기자가 찍은 사진을 보면 모두 대낮에 찍은 사진들이다. 살아남은 미군들이 장진호를 걸어서 건너고있다. 장진호 서쪽에는 미해병대 1사단이 있다. 1950년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제1차공격. 1950년 10월말 중공군 42군 사령관 린치앙이 혜산진에서. 1950년 11월 25일 중공군 39군이 계천에서 적이 오기만 기다리고있다. 1950년 11월 25일 중공군 40군의 2차공세, 청천강에서 소민동을 공격하고있다. 1950년 11월 중공군 39군이 운산근교에서 UN군 추럭들을 포획하고있다. 중공군 9사단이 장진호로 향하고 있다. 줄잡아 1십만명이 장진호에 투입된 것으로 되어있다. 1950년 11월 27일 중공군 79사단이 장진호 동쪽에 진입한 미군 7사단 31연대 1대대를 괴멸시키기 위하여 출동준비중이다. 중공군 79사단이 미7사단 31연대 1대대를 공격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스러운 점은 장진호에서 살아 돌아온 미군들의 증언에 의하면 중공군들은 산 능선에서 낮에는 조용히 있다가 밤이면 피리와 나팔을 불면서 인해전술로 다가왔다고 했는데 중공군 기자가 찍은 사진들은 대낮에 찍은 사진들이고 평지에서 전투를 하던가 내지는 산으로 공격해 올라가는 사진들이어서 증언과 다르다.
중공군은 미7사단 31연대 깃발을 수거해다가 북경한국전쟁박물관에 전시 해 놓고 있다. 미 7사단 31연대는 장진호에서 3000명 병력중에 1000명이 전사했다. 1951년 2월 12일 중공군 8로군의 횡성공격. 한국군 3사단, 5사단, 8사단 그리고 미군2사단이 큰 피해를 입었다. 1950년 12월 6일 평양을 재탈환하는 중공군. 중국공군의 지원을 받아 공격하고 있는 중공군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한국전에 참가한 중국공군은 적기 1대 추락, 3대 파손의 성적을 올렸다고 한다. 중공군장교가 상황판을 읽어주며 지시하고 있다. 허리에는 방망이 수류탄을 차고있다. 용산동에서 한국군6사단을 공격하고있는 중공군. 1950년 1월 4일 서울에 입성하는 중공군. 중공군 T34 대포를 산정상에 숨겨놓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중공군이 미군을 생포하고 있는 장면. 미군을 생포하고 있는 장면. 중공군은 9mm Sten Mark2 기관총과 일제 6.5mm 38구경 장총을 들고 있다. 흑인으로 구성된 미군 24사단 포로들. 중공군 5차공격 1951년 4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추럭과 대포들이 대낮에 행군하고 있다. 한강을 건너고 있는 중공군. 벙커에 있는 중공군, 쏘련제 7.62mm Ruchmoy Pulemyot 기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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