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내 발길 닿은 곳

신석초 시인과 서천 (우리문화 기행)

무너미 2010. 10. 6. 05:30

 

 유난히도 후덥지근하고 지루하던 더위가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답답했던 가슴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한산모시 전시관 뒤편 양지바른 언득에 신석초 시인의 시비와 이상재 선생의 추모비, 조선시대 여류시인 중의 한 분인 임벽당 김씨의 시비가 서 있었다.

 신석초 시비는 화강석으로 구름을 형상화 한 모양이 특이하다. 시인의 흉상을 제작한 정성도 놀랍다. 시비에는 “꽃잎절구”라는 시 한편이 있기에 읽어보니 우리네 삶도 꽃처럼 짧은 생의 순간이 아닐까? 더욱 소중하게 느꺼 진다.

 

꽃잎절구  / 신석초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날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저 가노니

 

저문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이상재선생추모비’는 오석(烏石)에 ‘월남이상재선생추모비(月南李商在先生追慕碑)’ 가 세로 행으로 새겨 넣었으며 받침돌에는 무궁화를 머릿돌에는 화강암으로 된 용이 조각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종묘공원에  있는 이상재 선생 동상

 

이곳에서 필자가 처음 접하는 임벽당 김씨(1492-1549년)의 시비가 큰 자연 화강석에 시 ‘빈여음(貧女吟)’ 이란 시를 읽어 보니 가슴이 아려 오네...

 

貧女吟(빈녀음/가난한 아낙의 노래

 

境僻人來少(경벽인래소) : 사는 곳 궁벽하니 오는 사람 적고

山深俗事稀(산심속사희) : 산이 깊숙하니 세속의 일 드물구나.

家貧無斗酒(가빈무두주) : 집이 가난하여 한 말 술도 없으니

宿客夜還歸(숙객야환귀) : 묵고 갈 손이 밤에는 돌아가는구나.

 ※ 임벽당 김씨 : 임벽당 김씨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유여주의 처이다. 남편 유여주는 기묘사화가 터지자 충청도에 은거하면서 임벽당을 짓고 살아가면서 독서와 서예로 일생을 보냈다. 그가 죽고 나서 부인 임벽당 김씨는 외로움과 가난함을 시로 노래하면서 가문의 후손들을 길러 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함께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 이고장의 인물이다.

 한산 모시관은 민속촌과 같은 형태의 모시마을이 아닌, 박물관 형태의 모시전수관이었다. 전수교육관에는 한산모시와 관련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시풀부터 옷감이 나오고 모시옷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전수교육관 내 전시실에는 모시의 역사를 전해 주는 고증 서적과 베틀, 모시길쌈 도구, 모시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통공방에서는 모시풀 재배에서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등의 공정을 재연한다. 또 250여점의 향토문화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조상들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한산모시는 풀에서 나는 천연소재입니다.

모시풀이 다 자라면 어른 키를 넘도록 자란다.

풀이나, 가느다란 나무줄기처럼 쑥숙 자랍니다.

1년에 2~3회차에 걸쳐서 베어다가 줄기의 껍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줄기의 껍질에 껍질을 볏겨내어서 미리 말려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풀이라서 썩을 수 있습니다.

잘 말려 두었다가 다시 사용할때는 물에 불려서 한답니다.

모시풀에서 두번째 아니, 세번째 정도는 손길이 간 [태모시] 입니다.

모시로서의 처음을 말함이겠지요

 

충남 서천에 가시면 한산모시관을 꼭 방문해 보세요.

세계 최고 품질의 한산세모시에 감탄을 하시게 될겁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

19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초가 3칸으로, 전체 면적 1,434㎡이며 서천군에서 소유, 관리한다. 1955년에 멸실되었으나 1972년과 1980년에 서천군에서 안채와 담을 복원하였다.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농가 분위기를 갖추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집 앞면의 지붕 길이가 뒷면보다 길게 만들어진 것이 독특하다.

 

생가 옆에는 1990년 착공하여, 1997년 7월에 개관한 유물전시관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서적 1,132점과 신문기사 80점, 만장 56점, 사진 49점, 가훈 1점, 병풍 1점, 친필 3점, 임명장 6점, 상소문 1점 등 선생이 남긴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담장이 흙 담장에 짚 이엉으로 둘러 처진 모양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집 밖 주차장은 공사가 한창이다. 뒤편은 조용한 농촌 마을이고 앞 들판에는 벼가 노랗게 엉글어 가고 있다.

 

 

 

 문헌서원

문헌서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벽지 시골이 선조님 음덕을 받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막상 문헌서원으로 들어서니 공사가 한창이라 아직은 산만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공사를 맡으신 분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따라 다니면서 강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말을 혹시라도 할까 걱정을 하는 모습이 역력 했습니다.

 문헌서원 (충남 지정문화재 자료 제 125호)은 고려말 대학자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두 분을 배향하기 위해 선조 27년(1594년)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광해군 3년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워졌으며 이듬해(1611년) 문헌서원으로 사액되고 앞의 두분과 이종학, 이자, 이개 등 다섯분의 위패를 모셨다. 현재는 이종덕 한분을 더해 여섯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우리가 구경 한 곳 외에도 주변에 금강 하구 둑, 비인 오층석탑(보물 224), 마량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69), 춘장대해수욕장, 흥원항 등의 관광지가 있다.

 

참고자료 출처 : 김경식 시인의 안내지 및 서천군청 홍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