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좌복
외진 절에서 기다란 좌복 하나을 얻어왔다
누구에게나
텅빈 방 안에서
온몸으로 절을 올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찔레나무 가지 끝에서
막 고개를 쳐드는 자벌레 한 마리
가지가 찢어져라 애먼 하늘을 볼 때
- 이홍섭(1965~ )
*좌복: 참선이나 절을 할 때 쓰는 방석
우리들의 생(生)의 지도에는 여러 갈래 ‘찔레나무’ 가지들이 굽이쳐 있다. 그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으니 하나만 택할 수밖에. 그러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그래서 더 이상 가야할지 아니면 되돌아와 다른 가지로 가야할지 망설여질 때. 우리는 오래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리석은 자벌레인 우리는.
허리와 머리와 무릅을 굽혀 가지런히 ‘나’라는 것은 맑은 물이 되어 순리(順理)대로 흐르고 고인다. 그때 그 절하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자벌레가 아니라 속으로 들어가는 자벌레인 셈이다. 얼굴은 편안해지며 다투던 일도 줄게 된다. 절은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다. 낮은 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저 우리가 갈구하는 진리(眞理) 말이다. 교회에 하나님이 있고 절에 부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낮은 곳, 힘들고 어려운 삶들, 그들에게 절하는 좌복이 없다면 높은 사람이 아니리.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12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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