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아버지의 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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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밭·1
그곳은 언제나 초록빛 숲이 닿아 잇다. 달팽이의 노란 등짐 혹은 작은 자벌레의 투명한 행로만으로 무성한 눈물자국
소리와 빛의 고랑을 고루 헤쳐 보면 안다 흰 두견 쓴 앞산이 쇠호미를 잡으면 텃밭의 깊은 뿌리가 숲 속으로 기운다.
비 그친 뒤 애야 보아라 흙은 자꾸 부풀고 부풀다 부풀다 못해 연한 순을 터뜨린다. 그곳은 보이지 않는 초록빛 숲이 닿아 있다.
- 박권숙(1962~ ) |
날씨도 시속(時俗)을 닮아가는지, 봄이 심상치 않다 윤 삼월이 또 있고, 이래저래 올봄은 꽃잎 잎샘이 잦을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물오른 초목(草木)은 제 몸을 풀고 있다. 꽃과 잎뿐이랴. 흙도 한껏 몸을 부풀리고 있다. 그 품의 작은 벌레들도 세상으로 나올 준비에 한창 바쁠 것이다.
그럴 즈음 밭에 나가보면 흙 속의 소리들이 고물고물 잡힌다. 아버지의 밭에도 봄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버지들이 봄을 불러들어 흙의 연한 순들을 터뜨리는 거겠다. 새로 피워 올린 연한 순들과 함께 세상을 또 잘 헤쳐가라고-, 그런 당신들이 계시어 이 땅의 봄이 다시 꽃 피고 있으니, 시인도 초록빛 숲을 향해 깊숙이 고개 숙인다. 봄을 여는 모든 아버지의 밭에 경의를!
(조선일보 4월 13일)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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