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쌀 빚을 탕감해달라고 관아에 바친다(呈分司乞蠲戶米·정분사걸견호미) | |
호젓한 집을 개읗가 응달에 장만하여 메추라기와 작은 숲을 나눠 가졌는데 썰렁한 부엌에는 아침밥 지을 불이 꺼졌고 쓸쓸한 방아에는 새벽 서리만 들이친다. 초가삼간에는 빈 그릇만 달랑 걸려 있고 쌀알 한 톨은 값이 만금(萬金)이나 나간다. 낙엽 쌓인 사립문에 관리가 나타나자 삽살개는 짖어대며 흰 구름 속으로 달아다. |
幽捿寄在澗之陰 (유서기재간지음) 分與鷦鷯占一林 (분여초료점일림) 冷落山廚朝火死 (냉락산주조화사) 蕭條野確曉霜侵 (소조야확효상침) 三椽小屋懸孤磬 (삼연소옥현고경) 一粒長腰抵萬金 (일립장요저만금) 落葉柴門官吏到 (낙엽시문관리도) 仙尨走吠白雲深 (선방주폐뱃운심) |
- 정초부(鄭樵夫)· 1714~1789) | |
가난뱅이 시인의 낭만적인 넋두리 시다. 영조시대의 노비 시인 정초부터의 초가집으로 쌀 빚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쳐들어왔다. 그에게는 갚을 쌀도 없었고 버틸 권력도 없었지만 다행이 시를 쓸 능력은 있었다. 며칠 굶은 궁상을 늘어놓아 빚을 갚을 처지가 못 됨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메추라기와 산자락을 나눠 차지했다니 그의 삶은 메추라기처럼 미약해 보이고, 삽살개가 짖어대며 흰 구름 속으로 달아났다고 하니 조금만 더 몰아세우면 그도 곧 영영 인간 세상을 버릴 것만 같다. 시를 아는 관리라면 연민의 정이 들어 그냥 되돌아갔으리라. 시는 때때로 논리가 정연한 문서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다. (조선일보 4월 28일) 안대회. 성균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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