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집
집
안에서 삽사리 꼬리 기쁨이 마중 나왔다. 안에서 내 마음이 마중 나왔다.
철모를 벗고 총을 내려놓았다. 탄띠를 풀었다
황소가죽 워커를 벗고 왼발부터 양말을 벗었다 맨발 둘이 새싹인 듯 불쌍 하게시리 나와 있다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울음이 이루어졌다 ―고은(1933~ )
이것은 다큐멘터리인가? 역사인가? 르포르타주인가? 저 행간은 한껏 젖어버린, 들추기 무서운 이야기가 가득한 빈집이다. 제 집에 맘 놓고 들어설 수 없는 사내, 기웃거렸으리. 그때 기르던 삽사리의 마중에 비로소 마음 내려놓는 집, 그 순간의 환한 자유! 잠시 명령에서 벗어나, 소가죽 워커(걷어차고 걷어차였으리!)에서 벗어나 맨발이 된 이 사나이. 맨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둘이 되는, 둘이란 게 불쌍하리만큼 반가운 빈집. 혼자서 온 식구가 된 집. 잠깐 사이 거짓처럼 비어버린 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내의 사진에서는 왜 울음이 솟는가.
울음을 이루는 집이니 그 처마마저 흐느꼈으리. 참으로 긴 시다. (조선일보 5월 30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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