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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저수지는 웃는다.

무너미 2012. 6. 13. 05:54

 

 

[가슴으로 읽는 시] 저수지는 웃는다.

 

저수지는 웃는다.

 

저수지에 간다.

밤이 되면 붕어가 주둥이로

보름달을 툭 툭 밀며 노는 저수지에 간다.

 

요즈음의 내 낙은

저수지 둑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아무 돌멩이나 하나 주위 멀리 던져보는 것

 

돌을 던져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는 저수지의 웃음을

가만히 들어다보는 것 긴긴 한숨을 내뱉어 보는 것

 

알겠다. 저수지는

돌을 던져 괴롭혀도 웃는다. 일평생 물로 웃기만 한다.

 

생전에 후련하게 터지기는 글러먹은 둑, 내 가슴팍도 웃는다.

 

- 유홍준(1963~ )

 

                      ▲유제일

 

물가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다 내 친구다.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것 같고,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은 내력을 이미 다 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 선은 물과 같다)니,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어쩌고 하는 것은 뒤미처 오는 말일 뿐 물가에 앉은 사람은 그것 '이전'이다.

 

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그렇게 그 자세로, 말하자면 두 손을 깍지로 끼고 무릎을 싸안고 실한 풀포기 위에 앉아 구름도, 저녁별도 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조상 대대로 흘러내려 오는 물길의 저수지였으니 돌멩이 하나 던져 만드는 무위(無爲)의 파문 하나로 그 터져나갈 것 같은, 그러나 아주 터져나가면 안 되는 거대한 무거움을 다독일 뿐이다. (조선일보 6월 13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