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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운자(韻字)를 부르기에

무너미 2012. 6. 2. 05:49

 

 

[가슴으로 읽는 한시] 운자(韻字)를 부르기에* (呼韻·호운)

 

운자(韻字)를 부르기에* (呼韻·호운)

 

시장과 먼 곳에다 살 곳 정하고       卜居遠朝市(복거원조시)

약초 심고 이엉 엮어 집을 지었네     種藥又誅茅(종약우주모)

꽃 앞에는 술이 있어 함께 취하나     酒有花前醉(주유화전취)

버들 아래 문 있어도 찾는 이 없네    門無柳下敲(문무유하고)

방과 방엔 책과 그림 가득 채우고     圖書常滿室(도서상만실)

부엌에는 생선과 나물 넉넉하여라    魚菜更餘庖(어채갱여포)

지극한 즐거움이 여기 있나니          至樂元斯在(지락원사재)

속인들 조롱해도 괘념치 않네          不嫌俗子嘲(불혐속자조)

 

                                   ―서영수각(徐靈壽閣·1753~1823)

 

명문 사대부 집안의 부인이자 어머니인 서영수각의 시다. 귀부인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우선 조정이나 시장과는 먼 곳에 살 집을 정하기로 한다. 집을 마련한 뒤에는 약초를 심고 초가지붕을 해서 얹으리라. 그 집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화단에 꽃이 피면 마시고 취할 수 있는 술을 넉넉하게 장만해놓되 찾아오는 사람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방안에는 책이 가득하고 부엌에는 물고기와 채소가 넉넉하게 있다. 바라는 것은 이것뿐이다.세상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겠지. 뭐든지 할 수 있으련만 저렇게 쓸쓸하게 책이나 읽고 나물이나 먹으며 살까 하고. 하지만 가진 자의 행복이 꼭 화려함에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그녀는 그것을 말하고자 했으리라. (조선일보 6월 2일)

 

* 시의 운자를 다른 사람이 부르자 거기에 맞춰 시를 지었다는 뜻.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