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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빗속의 고래 싸움

무너미 2012. 6. 9. 05:54

 

[가슴으로 읽는 한시] 빗속의 고래 싸움

 

빗속의 고래 싸움 (雨中觀鯨鬪)

 

고래가 비를 맞으며 바다에서 노는데          鯨魚得雨戱滄溟(경어득우희창명)

솟구친 이마와 코, 기세가 흉포하다.          額鼻軒空氣勢獰(액비헌공기세녕)

높은 파도 말아 올려 우주를 막아선 듯        怒捲層濤妨宇宙(노권층도방우주)

외로운 섬 뒤흔들어 폭풍우가 싸우는 듯       聲掀孤嶼鬪風霆(성흔고서투풍경)

대양의 남만(南蠻) 배는 뒤집힐까 걱정하고    中洋蠻舶渾愁覆(중양만박혼수복)

바닷가 어촌에는 비린내가 뒤덮었다.          傍岸漁村盡帶腥(방안어촌진대성)

희를 치면 배부르게 포식 한번 하겠구나.      斫膾可堪供一飽(작회가감공일포)

허리에 찬 청평검(靑萍劍)을 웃으며 바라본다. 笑看腰下有靑萍(소간요하유청평)

 

                                                 - 정홍명(鄭弘溟. 1582~1650)

 

        

                     ▲김의균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호(文豪)인 송강 정철(1536~1593)의 아들 정홍명이 동해 바닷가에 머물 때 비를 맞으며 성곽에 올랐다. 바다에는 고래가 떼로 몰려와 솟구쳤고 어선이 다가가 총을 쏘며 잡으려 했다. 성곽 위에서 그 장면을 내내 지켜보던 그는 시를 지어 호쾌한 기분과 벅찬 감동을 힘차게 드러냈다. 운 좋게 본 장면에 몸도 마음도 바다와 고래의 기운을 받은 듯 허리에서 검을 뽑아 고래를 회 치고 싶다는 호기가 불끈 솟구쳤다. 누군들 그러지 않으랴! 거대하고 역동적인 고래의 군무(群舞)를 구경한다면 흉금이 툭 터질 것만 같다. (조선일보 6월 9일)

 안대회·성균관대 교수· 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