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무관심 속에, 폐허로 변한 안중근 의사 유적지

安의사 유적안내판 사라지고 石碑 뽑혀.. 방명록엔 "나라 망신"
안중근, 히로부미 저격前 머물렀던 곳… 이젠 잡초만 무성한 폐가로 내버려져中 훈춘市가 2005년 정비… 3년 전까지 관리하던 中동포, 지원 없자 못 버티고 떠나 한국정부, 공식 지원 망설여 "安의사 유적지 고증 안됐다"中은 北과 접경지역 이유로 복원에 소극적으로 나와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석비(石碑)도, 안내 팻말도 없었다. 초가는 뒤로 크게 기울어 있었고, 수년 전만 해도 울타리가 쳐 있어 깔끔했던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잘 모르는 상태로 찾아와서는 이곳이 안 의사의 유적지라는 것을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지난 18일 찾아간 지린(吉林)성 훈춘(琿春) 취안허(圈河)촌의 안중근 의사 거소(居所) 유적은 시골 폐가의 모습과 비슷했다. 초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너져 내린 부뚜막에 솥뚜껑이 나뒹굴고 있었다. 안 의사의 사진이 걸린 대들보 아래 백열등은 불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무도 관리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북·중·러 3국 국경 부근에 있는 이 초가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기 직전인 1907~1908년 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할 당시 자주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유적이다. 당시 안 의사의 친척 안동렬의 소유였던 이 집은 안씨 집안에서 대대로 거주해왔다.
지난 2005년 훈춘시가 정비에 나서면서, 이곳은 국내 항일 유적지 답사단이 단골로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의거 100주년인 지난 2009년에는 대규모 방문단이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도로변에는 '안중근 의사 유적지'라는 푸른색 안내판이 내걸렸고, 초가 입구에는 '안중근 의사 생애'라고 쓰인 한글과 중국어 석비 두 개가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내판도 석비도 모두 사라졌다. 지난 3월 이곳을 방문했다는 한 한국인 관광객은 "안내판이 없어 중국 동포 가이드조차 이곳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면서 "소중한 유적지가 폐가로 변한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도로 앞에 서 있던 안내판은 지난해 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취안허 시외버스터미널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초가로 오르는 길 입구에 설치돼 있던 석비 2개도 지난해 가을 신분을 알 수 없는 남성 여러 명이 파내서 가져갔다고 취안허촌 주민들이 증언했다. 대기업 회사원인 김천일(43)씨는 "지난해 9월 말 이 초가를 방문했는데, 당시 이미 석비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간도(間島) 지역의 몇 안 되는 안 의사 관련 유적 중 하나인 이곳이 폐가로 변한 것과 관련, 한·중 양국 정부의 무관심과 소극적인 태도가 주 요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초가 바로 아랫집에 거주하는 한족 여성 쑤(蘇)씨는 "중국 동포 주민 최금화(39·여)씨가 노부모와 함께 초가를 관리했는데 최씨는 3년 전 한국으로 돈 벌러 갔고, 노부모도 훈춘 시내로 이사를 가버렸다"면서 "최씨가 '양국 정부에서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며 떠났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이곳이 안 의사 유적지라는 고증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이혜균 안중근의사숭모회 기념사업부장은 "안 의사가 이 초가에 머물렀다는 다양한 현지 증언이 있지만 문헌 등을 통해 고증이 이뤄지지 않아 정부가 공식 지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도 이 지역이 북한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접경 지역이라는 이유로 복원에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의 한 한국인 기업가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훈춘시 정부 내 중국 동포 중에 이 유적 복원을 추진하자는 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면서 "민감한 접경 지역인 데다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와도 얽혀 있어서 중국 당국이 이곳 정비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초가 안에 있는 방명록에는 최근까지도 매달 수십 명이 다녀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개중에는 미국 워싱턴주와 러시아 연해주에서 온 교포도 있었다. 지난 13일에 이곳을 찾은 조미향씨는 "많은 말이 필요없는 곳입니다.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애국심과 희생이 느껴집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복원과 정비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방문객은 "대한민국 국민은 이곳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라 망신이다. 복원을 해야 한다"는 글을 남긴 이도 있었다.
출처 : 조선일보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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