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점집 앞
점집 앞
아마 官妓로 산다는 것, 그 遊樂의 나날이 늘 즐겁지만은 않았을 거야. 왜 안 그랬겠어. 답답한 날도 있겠지. 한 날은 점집을 찾았는데, 점집 대문 앞 살구나무가 분홍꽃구름을 이고 서 있네.
점집으로 발 들여놓지 못한 채 분홍꽃구름 아래 얼음기둥으로 서 있는데, 취한 듯 취한 듯 취한 듯 내 속의 관기가 미쳐 홀연히 미쳐서는 금생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몸짓으로 춤을 추는 것이네.
―장석주(1954~ )
팔자라고도 하고 운명이라고도 하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일이나 끝끝내 믿고만 싶은 일들이 우리 생(生) 가운데는 부지기수다. 누가 날보고 시를 쓰라고 강요했으리요. 지금 곁의 이 사람과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으며, 미래의 모든 행불행(幸不幸)의 출처를 어찌 알리요.
우습지만 나도 '그 집'을 찾은 적이 있다. 운명을 점친다는데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결론은 싱거웠다. '그게 네 인생이야….' 이 기생 아가씨 민망함에 점집 앞에서 망설이다가 만발한 살구나무에 문득 깨우치는 바 있었으니 점집에 들어서지 않아도 되겠다.
지금 나를 사랑하는 것, 지금 나의 불행까지를 껴안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선(善)이고 그것이 운명이라고 세상의 시인은 노래하고 무당도 그렇게 얘기해 줄 것이다. 시 속 관기(官妓)의 저 '타고난' 새 춤사위를 보라! 춤꾼의 아픔은 춤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9월 19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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