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나비처럼 가벼운 이별
나비처럼 가벼운 이별
어제 오후에 해바라기를 씹어 먹었다 내가 해바라기를 먹자. 해바라기들이 붉어요. 붉어요. 하며 흐느꼈다.
그는 꽃밭에다 나를 앉혀놓고 고무 찰흙을 토닥여 내 남편을 만들더니 빨간 꽃잎 따 나비넥타이까지 장식해선 브로치처럼 앞가슴에 달아준다. 그리고 뒤돌아 오래 강을 바라본다. 그가 강물을 오래 바라보는 건 강물이 여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뒤돌아 아장아장 꽃밭을 걷는다. 걸을 때마다 내 가슴속 해바라기들 붉은 임신을 하고 나는 나비처럼 가벼운 이별을 무심히 손에 쥔다.
- 박연준(1980~ )
아이는 외롭다. 아이는 늘 해바라기를 하고 해바라기는 마침내 아이의 목젖을 뜨겁게 한다. "붉어요, 붉어요." 이렇게 외롭고 간절한 흐느낌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왔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강이 보이는 언덕 꽃밭에 쓸쓸한 야유회를 왔다. 이들이 왜 떨어져 사는지 그 까닭 같은 걸 따져보는 일은 이미 이들 생에서 불필요하다. 아버지는 정답고, 그러나 그 정다움은 찰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허술한 것이어서 외려 화려한 장식까지가 필요하다. 끝내 아버지도 뒤돌아 긴 강물을 바라본다. '강물이 여리다는 걸' 아이도 다 안다. 다시 이별을 예감한 아이는 꽃밭을 걷는다. 하나 다행이다! 아이는 이별을 나비로 만들 줄 알고, '이별을 무심히 손에 쥘' 줄 알아서. (조선일보 10월 29일)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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