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맨드라미
맨드라미
화단 앞에서 수탉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며 서로 대가리를 콕콕 쪼아대는데, 벼슬에서 피가 얼키설키 쏟아진다. 싸움에는 퇴로가 없다. 기세등등한 부리가 화살이자 곧 과녁이다. 장벽으로 마주 보고 있다가도 다시금 치받으니, 이것이야말로 생을 벼랑으로 밀고 가는 싸움이겠다. 급기야 한 마리가 이승 너머까지 나아가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른다. 수탉의 대가리에서 붉디붉은 맨드라미 활짝 핀다. 그때 대숲에서 은둔하던 족제비 부부가 수탉 한 마리씩 물고 논길로 사라진다. 한됫박의 피 흘리고 간 수탉의 저승길만큼 화단의 맨드라미가 막무가내 꽃 피우는 일도 혼곤하겠다.
―이병일(1981~ )
맨드라미처럼 더운 꽃도 없다. 제 키의 반이 닭 벼슬처럼 생긴 꽃이다. 무겁게 꽃을 이고 있거니와 그 빛깔도 걸쭉한 붉은빛이니 덥다고 아니할 수 없다.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괴상하다고 해야 할지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겠고, 한데 그 꽃이 부귀(富貴)의 상징이라고 안팎으로 많이들 심는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도 여름부터 지금까지 여럿이 낭자하다. 그런데 아뿔싸! 가만히 보니 그게 맨드라미가 아니라 수탉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수탉처럼 용맹한 짐승도 드물다. 철저히 제 권력을 지키려 한다. 무모할 정도다. 권력을 잃은 수탉을 본 적 있는데 철저히 보복을 당해 회생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일단 그 투쟁에 돌입하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모양인데 거기엔 체면도 죽음도 없는 듯하다. 족제비에게 물려가는 이 땅의 투계(鬪鷄)들을 참으로 많이 보아온 터이다. (9조선일보 11월 7일)
장석남·시인 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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