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못
못
모-든 빛나는 것 아롱진 것을 빨아 버리고 못은 아닌 밤중 지친 瞳子처럼 눈을 감었다.
못은 수풀 한복판에 뱀처럼 서렸다 뭇 호화로운 것 찬란한 것을 녹여 삼키고
스스로 제 沈默에 놀라 소름친다 밑 모를 맑음에 저도 몰래 으슬거린다
휩쓰는 어둠 속에서 날(刃)처럼 흘김은 빛과 빛갈이 녹아 엉키다 못해 식은 때문이다
바람에 금이 가고 비빨에 뚫렸다가도 상한 곳 하나 없이 먼동을 바라본다
―김기림(1908~?)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은 지금 깊은 겨울잠에 들었을 것이다. 눈 속에 덮여 있는 들풀들, 잎은 진작에 다 시들어 제 이름도 지워졌지만 그 생명은 수많은 잔뿌리로 얽어서 감싸고 있을 것이다. 모진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다. 어려운 시간을 이기는 지혜를 그것에서 배워야 하리라. 이 시를 보면서 상처와 상실감의 위안으로 삼으면 어떨까. 연못(池)은 '아닌 밤중 지친 瞳子(동자)처럼 눈을 감었'고 '뭇 호화로운 것 찬란한 것을 녹여 삼키고' 있다. '제 沈默(침묵)에 놀라 소름치'기도 하지만 끝내 연못은 '밑 모를 맑음'에 저도 몰래 놀란다. 맨 마지막에 '상한 곳 하나 없이 먼동을 바라본다'고 노래하듯 모든 상처받은 이의 마음이 밑 모를 맑음으로 다시 차서 저 먼동 맞는 연못과 같아지기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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