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반나절 봄

무너미 2013. 5. 10. 07:02

 

 

[가슴으로 읽는 시] 반나절 봄

 

반나절 봄

 

소리, 파시, 미카 이름을 가진 기차 아지랑이 언덕 넘는 반나절 봄이 있다

KTX가 서울서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해도 시간이 남는 반나절 봄이 있다

버들가지 물 위에 졸고, 풀밭에 늘펀히 앉아 쉬는 반나절 봄이 있다

고운 나이에 세상 등진 외사촌 동생 순자 생각나는 반나절 봄이 있다

어린 마음 떠나지 못하고 물가에 앉았는 반나절 봄이 있다

 

                                                               ―도광의(1941~      )

 

 

짧다. 싸맸던 목도리를 풀고 곧바로 반팔 옷을 입는다. 봄꽃들 피는가 싶어 좀 들여다보리라 맘먹고 있는데 어느덧 잎사귀만 퍼렇다. '봄'이라는 시간의 이름. 봄만 그러랴. '청춘'이라는 생애 한때의 이름. 한나절도 아니고 반나절이라니.

 

'반나절'이라는 그 음감과 뜻 속에는 차라리 깊고 긴 심연의 느낌이 깔려 있지 않은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좀 긴 시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그 시간의 크기를 알기에 차라리 영원을 추구해 보자는 심사다.

 

저 기차 미카다… 저 기차는 파시다… 그렇게 호명하며 기차 구경을 하던 시절이 아지랑이처럼 사라졌고 지금은 시속 200㎞ 넘는 쏜살의 기차가 지난다. 반나절만 살다 간 동생도 있다.

 

한 노인이 그 언덕에 다시 앉아서 시간의 터널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아쉬움이 반, 쌉쌀한 미소가 반이다. 버들가지가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우리 전 생애의 길이는 반나절쯤이라고 규정해 보고 싶은 찬란한 봄이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오늘의 좋은 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꽃  (0) 2013.06.07
벼루를 닦으며  (0) 2013.05.24
  (0) 2013.04.26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0) 2013.04.12
아버지의 쌀  (0) 201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