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이런 꽃

무너미 2013. 6. 7. 06:03

 

 

[가슴으로 읽는 시] 이런 꽃

 

이런 꽃

 

순 허드레로 몸이 아픈 날

볕바른 데마다

에돌다가

에돌다가

빈 그릇 부시듯 피는 꽃

 

               ―오태환(1960~       )

 

 

딱히 어디랄 것 없이 무겁고 아픈 것, 그러니까 '허드레로' 아픈 것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리라. 그리운 이를 보지 못해 생긴 병이며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이가 있어 생긴, 자기도 모르는 아련한 마음의 통증인지 모른다. 그 목마름의 경험 없는 이 있으랴. 그러한 날은 오래 방치해 둔 마음자리를 펼쳐놓고 더듬어 살펴봐야 한다.

 

볕바른(좋은) 데를 찾아다니며 쪼그려 앉아 그리운 이들을 불러본다. 어머니, 이마 푸른 시절의 그녀들, 혹 마음을 저리게 했던 누군가도 있었을까? 그렇게 '에돌다'보면 그들 얼굴이 하나씩 나타날 테니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함께 눈이 젖고 나면 비로소 마음 위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나리라. 그것은 청신하게 씻어 올려놓은 백자 사발 같은 꽃이리라.

 

서양말을 끌어 써서 유감이지만 '힐링'이 유행어다. 그것은 '빈 그릇 부시듯 피는 꽃(마음)'의 발견이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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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 잠언 24장 33~3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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