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가을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가을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구름 몇 점 입에 문 채로 푸른 하늘 등에 업고 바람처럼 시들거나 구겨지지 않는 노래 부르며
숲의 문 차례로 열어젖히고 끝 보이지 않는 깊은 산 속으로 타박타박 걸어들어가 마음의 어둠 검은 밤처럼 던져 버리고
우수수 쏟아질 듯 열린 하늘벌 가득한 별들을 한 낫에 추수하여 아무도 갖지 못한 한 재산 일구어내는
―이인구 (1958~ )
저 청한, 청청한 하늘은 참으로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스트가 아니고서 누구도 제 것으로 가질 수 없으리라. 저 청한, 청청한 하늘의 눈동자는 뼛속까지 아나키스트가 아니고서는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으리라. 저 하늘에 허덕이던 지난여름의 무더위를 벗어 날려버린다. 세간 살림의 비굴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저 청한 하늘을 맞아 뱃속의 기름기들을 부끄러워한다. 광활한 삶을 꿈꾸는 자, 저 청한 하늘이 뜰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우리라.
지난 일 년 동안, 아니 한 생애에 걸쳐 '바람처럼 시들거나 구겨지지 않는 노래'를 배워 부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는 된 거다. '푸른 하늘 등에 업을' 자격이 된다. 그는 '한 낫'(오, 이 통쾌!)에 어둠 속 자라난 별들을 쓸어 베어 추수할 수 있다. 그 재산 광활하다. '재산'이 많은 자, 눈동자 깊으리.
청마(靑馬)의 '깊은 산속, 이나 잡고 홀로 사는 산울림 영감'이 떠오른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