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장금도의 춤

무너미 2013. 10. 3. 04:17

 

 

 

[가슴으로 읽는 시] 장금도의 춤

 

장금도*의 춤                   *민살풀이 춤의 명인

 

그녀는 다만 한 손을 슬쩍 들었다

놓았다

하늘이 스르릉 치올라갔다가 푹

땅거죽이 주저앉았다

어디서 바람 한 점 스며들었나

그녀가 어깨를 살랑 우줄거리다 한 뼘

감아 올린 외씨 버선코

지구 저편 울음을 삼키던 새 한 마리

파르륵 날아올랐을 것이다

멈칫거리다 앞으로 내밀고

노을의 저녁처럼 뒤돌아섰을 때

언제 거기 검푸른 산 하나 서 있었던가

내 몸은 물고기 같은 비늘이 돋아나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박남준(1957~ )

 

 

한 손을 내밀어 멀리 뻗는다. 숨을 고르고서 아주 천천히 하늘이 쏟아지지 않도록 손등에 길게 펼쳐 얹고는 물에서 건져 올리듯 무겁게 들어 올리고는 일순 정지. 가늘고 긴 호흡 끝으로 검지 끝을 툭! 쳐올려 멀리 보낸다. 그러면 어떤 남색 파문이 저편으로 번져나간다. 가끔 나는 이런 동작을 혼자 앉은 채 해볼 때가 있다. 나는 내 미소를 그때 만난다.

 

춤은 옥죄고 얽은 모든 것을 벗어 내려놓는 일. 춤의 종내(終乃)는 몸마저 벗고 저만치 깨끗한 혼의 벌거숭이로 나서는 일. 말의 독에 시달리는 인생들에게 입은 꼭 닫고 몸으로, 온몸으로 영혼을 풀어주는 예술.

 

얼마 전 장금도 선생의 민살풀이춤 공연이 있었다. 못 갔다. 일생 후회가 될 것이다. 그 우주적 가락, 신명의 큰 질서에 생의 무게를 얹어보는 기쁨을 우리 같은 오합지졸은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전통을 향한 침잠 끝에 솟아나는 진정한 개성의 몸짓에 경배를 숨길 것인가. 값싼 도량형으로는 잴 수 없는 세계다. 우화등선! 생을 모두 모아 춤추고 싶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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