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동시 문창호지 바르는 날
문창호지 바르는 날
노란 국화꽃이 소복이 피어오를 때 우리 집은 문창호지를 발라요.
엄마 아빠 풀칠한 창호지를 마주 잡고 조금 틀어진 문짝에 이러저리 맞춰 발라요. 국화잎 은행잎 단풍잎으로 덧바르고 빗자루로 쓱쓱 쓸어 줘요.
- 얘들아! 물 좀 뿜어 봐!
물 한 모금씩 입에 문 우리들 연신 피-익 피-익 자꾸만 삐뚜름하게 뿜어져요. 엄마, 아빠 푸-우 푸-우 햇살같이 골고루 뿜어내는 소리.
귀뚤귀뚤 귀뚜라미 노랫소리 달그락달그락 밥 짓는 소리 달빛 소곤대는 소리 이제, 문창호지에 가득가득 담길 거예요.
―천선옥(1961~ )
이 동시를 읽으면 노란 국화꽃이 피고 단풍이 곱게 물들 때면 문창호지를 바르던 추억이 떠오른다. 겨울이 다가오면 으레 문창호지를 새로 발랐다. 길고 긴 겨울 채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문창호지를 바를 땐 국화잎 은행잎 단풍잎을 넣어 발랐다. 고운 꽃잎과 단풍잎을 덧바른 문창호지는 한 폭의 운치 있는 산수화 같았다.
햇빛 맑은 날에 문창호지를 바르는 가족들의 모습이 참 단란하다. '조금 틀어진 문짝'에 이리저리 문창호지 맞춰 바르는 모습과 물 한 모금씩 입에 물고 뿜어내는 가족들의 모습이 가을 햇살처럼 맑다. 문창호지에 귀뚜라미 소리, 밥 짓는 소리, 달빛 소곤대는 소리 가득 담기던 추억이 아련하다.
이준관 아동문학가 [출처] 프리미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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