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둥근 등
둥근 등
귀 너머로 성근 머리칼 몇을 매만져두고 천천히 점방 앞을 천천히 놀이터 시소 옆을 쓰레기통 고양이 곁을 지난다 약간 굽은 등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가만히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세상 쪽으로는 순한 언덕을 내어놓고 천천히 걸어 조금씩 잦아든다 이윽고 둥근 봉분 하나
철 이른 눈도 내려서 가끔 쉬어가는
―김사인(1955~ ) ▲일러스트 : 박상훈
조금 휘어져 둥그스름한 뒷등을 보고 있으면 편안한 마음이 생긴다. 무엇이든 잘 들어줄 것 같고 후한 인심도 느껴진다. 아마도 먼 산의 능선처럼 부드러운 곡선 때문에 그럴 것이다. 정말이지 그 등에서는 어떤 생명도 상처 입지 않을 것 같다. 순한 언덕인 그 등에서는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우주가 노래할 것 같다. 업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내 어머니의 등도 그러했다.
유순하고 따뜻한 사람은 맞이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이다. 비록 스스로에게는 모질더라도 세상을 향해서는 잘 익은 봄볕을 내놓는 사람이다. 스스로 봄이 되어 이 세계에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 세계를 업고 갔으면 좋겠다.
문태준 시인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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