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어화
어화
오늘 밤은 으르렁대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잠자는 구름 아래 어등(魚燈)이 빛을 뿜는다. 공활한 하늘이 훤히 펼쳐 있고 다닥다닥 별 떼가 반짝이는데 나뭇잎 사이로 이따금 꺼졌다가 켜지며 반공중에 까닭 없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잠 못 들고 몇 개 섬을 돌고 났는지 왁자하게 흩어지는 새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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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火(어화)
今夜鳴濤息(금야명도식) 魚燈照宿雲(어등조숙운) 空靑一天明(공청일천명) 錯落衆星文(착락중성문) 隔葉時明滅(격엽시명멸) 憑虛任聚分(빙허임취분) 不眠環數島(불면환수도) 號噪曙紛紛(호조서분분)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1758~1816) |
▲일러스트 : 이철원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1758~ 1816)이 흑산도에서 썼다. 밤바다 위에 뜬 고기잡이배의 불빛은 육지에서 유배 온 선비의 눈에 얼마나 낯설고도 황홀했을까? 며칠 동안 사납게 요동치던 파도가 잔잔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출어한 배가 켜놓은 어등이 밤바다를 수놓았다. 하늘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하늘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많은 별이 빛을 쏟아낸다. 바닷가로 나와 구경하며 섰노라니 배는 보이지 않고 나뭇잎 사이로 어등이 명멸(明滅)하며 이리저리 모였다가 흩어진다. 밤새도록 몇 개의 섬을 돌면서 조업했을까? 왁자하게 떠들며 흩어지는 어부들의 소리가 들려오니 새벽이로구나. 일어나야겠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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