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빈집의 화법
▲일라스트 : 이철원 |
빈집의 화법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 적 있었다 감물 든 서쪽 하늘 물러지는 초저녁 새들이 다녀가는 동안 버스가 지나갔다.
다 식은 지붕 아래 어둠 덥석 물고 온 말랑한 고양이에게 무릎 한 쪽 내어주고 간간이 떨어진 별과 안부도 주고받지.
누구의 위로일까 담장 위 편지 한 통 '시청복지과' 주소가 찍힌 고딕체 감정처럼 어쩌면 그대도 나도 빈집으로 섰느니.
직설적인 말투는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는 그대는 기다림의 자세, 가을이라 적는다.
― 김진숙(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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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곳이 도드라져가는 때다. 특히 명절 앞둔 즈음이면 빈집이 더 길게 눈에 밟힌다. 돌보지 않는 무덤 같은 빈집들. 아직은 벌초 행렬이 도로를 메우지만 여기저기 무너져가는 빈집들의 기다림도 한동안의 일일 뿐이다.
'새들이 다녀가는 동안 버스가 지나'가도 기척 하나 없는 집. '감물 든 서쪽 하늘 물러지는 초저녁'이면 희미한 기다림조차 쇠해졌겠다. '편지 한 통'이 그나마 '복지' 같은 잠시의 '위로'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하긴 지속적인 위로란 없으니 빈집은 '기다림의 자세'로 삭아갈 수밖에 없겠다. 부서질라, 가을바람도 그 곁으로는 발을 들고 지나겠지만.
정수자 시조 시인
[출처] 조선닷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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