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왕대폿집
왕대폿집
수원화성 화홍문 연못가 왕대폿집
벽에 걸린 주전자가 모과처럼 우그러져
막걸리 젖통을 만진 손들을 알만하다
안주도 안 시키고 막걸리만 들이켜는
넝마주이 단골손님 오늘은 안 보이네
그나마 막걸리 값도 마련이 못 되었나
대폿집 주인장이 문밖을 내다본다
리어카 세워놓고 딴 데 보는 단골손님
주인이 불러들이네 공으로 마시라고
ㅡ구중서(1936~)
▲일러스트 : 이철원
화홍문 근처의 명소였던 왕대폿집. 용연(龍淵)에 비치는 달을 거느린 수원 화성의 제1경 방화수류정 발치께에 있어 최고 운치로 꼽혔다. 그런 풍광 앞이니 한 잔이 열 잔 되긴 다반사다. 거꾸로 써놓은 간판 '왕대포'가 똑바로 설 때까지 마신다고들 취흥깨나 돋웠다. 물론 인심 좋은 안주며 '모과처럼 우그러'진 주전자들도 거둔 잔을 다시 들게 한 주범이다.
뜻밖에 만나는 주막. 시조집을 두 권이나 펴낸 원로 평론가의 복원에 뭉근해진다. 그리운 집들은 다 사진첩 속에 살듯 없어진 그 집, 대신 훤한 정비로 화성의 풍치는 한층 높아졌다. 지금은 옛적의 '단골손님'들만 입맛을 다시며 잠시 섰다 갈 뿐이다. 대폿잔깨나 기울이던 가을 저녁의 손들은 올 한가위 술잔 속의 달도 다른 데서 찾았으리라.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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