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조

작은 시

무너미 2015. 10. 23. 06:21

[가슴으로 읽는 시조] 작은 시

 

▲일러스트 : 이철원

 

작은 시

 

내 작은 시 그대의 위로가 되었으면

어깨를 눕히는 가을 깊은 산 아래

말갛게 울리는 물방울

소리로 다가간다면

 

숲 속은 한순간에 낙엽으로 무너지고

밤나무 긴 가지로 길처럼 뻗은 나날

반가운 편지를 보낼까

망설이곤 했지

 

엄미경(1964~ )

 

책과 더불어 등불을 댕기는 가을은 지난날 얘기다. 산과 들의 찬란한 잔치판에 여러 축제까지 보태니 독서는커녕 진득하게 들앉기도 어렵다. 와중에 오랜만의 시집 베스트셀러 소식이 반갑다. 대중에 대한 노골적 호소가 아닌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이라 더 각별하다.

시 읽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가 싶겠지만 도처의 독자들 반응을 만나보면 시 사랑은 여전하다.

 

그렇게 '내 작은 시'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으면'. '말갛게 울리는 물방울'

 

율로 그대의 '어깨를 눕히는' 가을을 그려본다. 단풍처럼 물들어 시 속으로 무너진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 '편지를 보낼까' 망설임 딛고 가는 시집 편지가 더 반갑겠다. 쓸모없음으로 쓸모를 깨우는 시라니, 세상 앞에 서면 더 '작은' 시집으로 초대해도 귀히 받겠다. 연애편지며 주머니 속에서 귀 닳던 시집들의 한때가 불현듯 젖어드는 가을도 한가운데.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발의 사랑  (0) 2015.11.06
  (0) 2015.10.30
變調.73  (0) 2015.10.16
둥글레  (0) 2015.10.09
왕대폿집  (0) 2015.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