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처가에서
처가에서
처가에서 겨울과 여름을 나는데 본가에서는 연락 한 편 오지 않누나. 빈둥거림 길들이자 묘한 맛이 생겨 도를 깨우친다는 헛된 명예가 참 우습다. 지저귀는 새들하고 수작이나 하고 산풍경이나 노상 접하고 있네. 세상사람 어느 누가 이런 복을 누리랴? 부잣집 호의호식도 나만은 못하리라. |
甥舘(생관)
甥舘淹寒暑(생관엄한서) 家書阻雁魚(가서조안어) 習閒生妙味(습한생묘미) 覺道笑虛譽(각도소허예) 鳥語供酬酌(조어공수작) 山光接起居(산광접기거) 世人誰享此(세인수향차) 鐘鼎不如余(종정불여여) |
▲일러스트 : 송준영
숙종조의 시인 원옹(園翁) 이의승(李宜繩·1665~1698)이 처가에서 한동안 머물 때 지었다. 처가에서 딱히 할 일도 없이 어정쩡한 생활을 이어간다. 1년이나 길게 떠나 있어도 본가에서는 연락 한번 오지 않는다. 아마도 껄끄러운가 보다. 하루하루 빈둥거리기만 하다 보니 공부하고 부산 떨며 일하는 게 다 귀찮다. 무료하고 나른한 생활도 묘한 재미가 있구나. 딱히 할 일도 없는 사위란 존재는 그림자와도 같아 간섭하거나 눈치 주는 이들이 없다. 그저 새들하고 친구 삼아 지내고 산만 질리도록 바라본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지금 이 순간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옛날에 백년손님이 한동안 누렸던 행복이란 저런 묘미가 있었나 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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