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한시

처가에서

무너미 2016. 1. 9. 09:13

[가슴으로 읽는 한시] 처가에서

 

처가에서

 

처가에서 겨울과 여름을 나는데

본가에서는 연락 한 편 오지 않누나.

빈둥거림 길들이자 묘한 맛이 생겨

도를 깨우친다는 헛된 명예가 참 우습다.

지저귀는 새들하고 수작이나 하고

산풍경이나 노상 접하고 있네.

세상사람 어느 누가 이런 복을 누리랴?

부잣집 호의호식도 나만은 못하리라.

 

甥舘(생관)

 

甥舘淹寒暑(생관엄한서)

家書阻雁魚(가서조안어)

習閒生妙味(습한생묘미)

覺道笑虛譽(각도소허예)

鳥語供酬酌(조어공수작)

山光接起居(산광접기거)

世人誰享此(세인수향차)

鐘鼎不如余(종정불여여)

 

            ▲일러스트 : 송준영

 

숙종조의 시인 원옹(園翁) 이의승(李宜繩·1665~1698)이 처가에서 한동안 머물 때 지었다. 처가에서 딱히 할 일도 없이 어정쩡한 생활을 이어간다. 1년이나 길게 떠나 있어도 본가에서는 연락 한번 오지 않는다. 아마도 껄끄러운가 보다. 하루하루 빈둥거리기만 하다 보니 공부하고 부산 떨며 일하는 게 다 귀찮다. 무료하고 나른한 생활도 묘한 재미가 있구나. 딱히 할 일도 없는 사위란 존재는 그림자와도 같아 간섭하거나 눈치 주는 이들이 없다. 그저 새들하고 친구 삼아 지내고 산만 질리도록 바라본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지금 이 순간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옛날에 백년손님이 한동안 누렸던 행복이란 저런 묘미가 있었나 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밭에 쓴 편지  (0) 2016.01.23
객지에서(客懷)  (0) 2016.01.16
새해를 맞아(新年得韻)  (0) 2016.01.02
서울에 살다보니  (0) 2015.12.26
동지 후 서울에 들어와 자다  (0)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