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에서(客懷)

무너미 2016. 1. 16. 08:42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에서

 

일러스트 : 이철원

 

객지에서(客懷)

 

이 몸은 동서쪽 그 어디로 가야 하나?

가는 곳 정처 없어 쑥대마냥 흘러가네.

떠돌다가 친구 만나 한 집에서 잠을 자며

난리 겪는 타향에서 새해를 맞이하네.

눈 덮인 산 훨훨 날아 기러기는 돌아가는데

새벽녘 바람 타고 나팔소리 들려오네.

서글퍼라, 낯선 땅을 구름처럼 가는 신세

돌아나는 봄풀에는 그리움만 하염없네.

 

客懷(객회)

 

此身那復計西東(차신나부계서동)

到處悠悠逐轉蓬(도처유유축전봉)

同舍故人流落後(동사고인유락후)

異鄕新歲亂離中(이향신세난리중)

歸鴻影度千峰雪(귀홍영도천봉설)

殘角聲飛五夜風(잔각성비오야풍)

惆悵水雲關外路(추창수운관외로)

漸看芳草思無窮(점간방초사무궁)

 

조선 중기의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이 임진왜란 와중에 지었다. 평소에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각지를 떠돌았는데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전란 중에 정처없이 방랑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 한 집 한 방에서 새해를 맞은 것이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위로일 뿐 다시 헤어져 각자의 행로를 떠난다. 눈에 덮인 첩첩한 산을 넘어 기러기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건마는 새벽길 떠나는 내 귓속에는 전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와 허둥대게 한다. 편안한 안식의 시간은 언제나 찾아오려나? 처량한 나그네의 눈에는 돋아나는 풀잎이 자꾸만 들어온다. 그래도 대지에는 새봄이 찾아오나 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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