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2

멀리 가는 울음

무너미 2016. 12. 12. 09:02

[가슴으로 읽는 시] 멀리 가는 울음


일러스트 : 이철원


멀리 가는 울음

 

바늘이 쏟아질 듯한 전나무 숲을 딛고 와서

아니 바늘의 그늘을 겨우 딛고 와서

 

마침내 서보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

 

한 층 더

한 층 더

당신의 모든 간절함 위에 딱 한 층 더

낮달 슬쩍 얹어놓고 가는 바람

 

종을 때리고 가다

끝내 자신도 울고야 마는 바람 배웅하며

손끝이 떨리는

문수, 문수보살이여

 

김창균(1966~ )

 

월정사로 가는 길 양편에 선 우람하고 훤칠한 전나무들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침묵의

숲길을 걸어가 본 적이 있다. 수천 개의 바늘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전나무를 우러러본 적이 있다. 그리고 월정사 대웅전 앞뜰 팔각구층석탑 아래에 가만히 서 본 날이 있다. 언젠가는 백지처럼 환한 대낮에, 언젠가는 기울어지는 석양의 때에, 언젠가는 깨끗하고 원만한 달이 떠오른 한밤중에, 언젠가는 얼음 같은 엄동(嚴冬)의 새벽에. 그 팔각구층석탑 아래 서면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시인은 석탑 맨 위에 낮달이 떠서 또 하나의 층을 이룬 것을 본다. 바람이 하얀 낮달을 밀어온 것을 본다. 그리고 멀리 가는 종소리를 끝까지 듣는다. 무욕(無慾)할 때에만 눈과 귀에 들어와 보고 듣게 되는 것들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http://new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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