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송년회
송년회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
ㅡ황인숙(1958~)('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 지성사, 2016)
칠순을 훌쩍 넘긴 노시인께서 마흔을 갓 넘긴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뭘 해도 참 예쁠 나이다! 그때는 나도 속으로 깔깔 웃었다. 마흔 즈음에 나는 이제부터는 늙겠구나라는 헛헛함에 급기야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다 운전대를 부여잡은 채 울컥했더랬다. 터무니없는 조로(早老)였다. '늘' 인생 청춘이었는데 말이다. 오십을 한참 넘긴 지금도 이제는 늙었구나라는 우울감에 휩싸이기 일쑤다. '아직' 내 척추와 내 생각과 내 걸음은 곧고 곧은데도 말이다. 그러니 남들이야 '노년의 몰약'이라 하든 말든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가 바로 지금이니, 우리는 앞으로! '늘 오늘'과 '작금의 지금'이 바로 청춘이니 또 앞으로, 앞으로!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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